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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다


  머지않아 온갖 꽃이 피어날 오월이 다가온다. 꽃은 사랑의 결과물이다. 사랑만이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 꽃은 곧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어떤 꽃으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을지 그건 우리들의 사랑의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늘 아이들이 작은 씨앗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씨앗 안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씨앗은 저절로 자라지는 못한다. 폭신한 흙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고, 촉촉하게 물이 적셔주어야 한다. 따스하게 햇볕도 내리쬐어야 하고 부드러운 바람도 불어주어야 한다. 온 세상이 그 씨앗을 사랑해주어야 씨앗은 우주적인 한 발을 내밀게 되는 것이다.


  먼저 아기장수 이야기



오월의 글을 쓰려고 생각할 때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 바로 아기장수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아기장수 이야기를 나는 어렸을 적에 듣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아기장수를 알게 되었을 때 아이를 죽이는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의 겨드랑이에 돋아난 날개를 떼는 장면이 현실과 자꾸만 겹쳐져 보였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 이야기는 참요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예언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 옛날 사람들이 널리 주고받았던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자기 아이를 죽게 할 것이라는 슬픈 예언이었고 그 예언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대부분 날개를 뜯긴 아기장수들이다. 날개를 떼어내는 사람들은 바로 아이들과 가장 가까워야 할 부모다. 그들은 자신이 날개를 떼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떻게 나락에 떨어지고 죽음에 가까이 가게 되는지 도통 알려고 하지 않으며 책임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일 년에 평균 네 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일 년에 네 명씩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나는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죽어간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성적 때문이 아니라 가족과의 불화 때문에 죽어 가는 아이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웠다. 부모들이 알지 못하는 새에 아이들은 부모 때문에 병들어가고 죽고 싶어 하는 것이다.


  누구야, 너는? 그리고 나는?


  남찬숙은 누구야, 너는?에서 아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병들어 가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현우는 어려서부터 외갓집에서 살게 되는데 그것은 사실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공부를 위해, 엄마는 직장을 위해 온 시간을 쏟아 붓느라 아이를 돌볼 여유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버려졌던 아이는 일곱 살이 되던 해 부모를 찾는다. 다시 할머니에 의해 부모에게 버려졌기 때문이다. 할머니 역시 자신의 남은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아이를 반기지 않았다. 현우는 그들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때 나는 아이를 낳으려면 부모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주위에서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망가지고 있는 것을 숱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부모가 되려면 적어도 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특히나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시간이 그리고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현우는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아무도 현우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그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아기 때 아이는 자신을 무한하게 사랑해주는 관계를 그 누군가와 맺어야만 한다. 그 사람이 누가 되었든 아이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만 아이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초기 관계가 결여되면 아이는 앞으로도 다른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집에서 보내는 첫 날 밤, 현우는 자기 때문에 싸우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고 무서움에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8) 현우는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사랑을 얻고자 스스로를 옭아맨다.


  엄마는 아침 일찍 나를 깨워서 근처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다. 나는 늘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엄마 차에 실려 유치원에 가야 했다. 오후가 되면 유치원 앞으로 나를 태우고 갈 학원 버스가 왔다. 학원 버스는 요일마다 달라졌다. 어느 날은 영어 학원, 어느 날은 미술 학원, 또 어느 날은 블록을 배우는 학원, 그리고 날마다 가장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 집이었다. 그 집은 우리 집이랑 같은 아파트에 있었다. 저녁이 되면 엄마가 퇴근하는 길에 나를 데리러 왔다. 가끔은 아빠가 오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나를 다시 외할머니나 다른 누구의 집으로 보낼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최대한 엄마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했다. (11)


  현우는 어린 나이에 마음껏 뛰어 놀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 엄마를 위해 공부하고 엄마를 위해 피아노를 배운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오로지 자신들의 힘겨운 문제에 치여 현우의 마음이 어떨 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아이가 듣는 데서도 큰 소리로 싸우며 헤어지겠다고 하고 심지어 엄마는 아빠에게 현우를 맡아 키우라는 말까지 한다. 이런 말을 혼자 방 안에서 바들바들 떨며 듣는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려 온다.



엄마 아빠는 진짜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주 크게 싸웠다. 나는 좀처럼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도 엄마 아빠가 싸울 때면 번번이 눈을 떴고, 무서워서 울었고, 심지어는 이불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13)


  현우는 이런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려간다. 그러나 엄마는 현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고 현우를 위해서 그런 삶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현우를 만족스럽게 여기지만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현우의 등을 마구 떠밀어 앞으로 나가기를 강요한다. 그것이 현우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결국 현우는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고 의사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이야기한다.


  저는 꿈이 아주 많습니다. 대학 교수도 되고 싶고, 판사나 검사도 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어요. 저는 꼭 성공을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아주 열심히 공부해요. 전 언제나 일등이 되기 위해 노력해요. 공부를 하는 건 아주 즐거워요. 저는 시험을 보는 것도 즐겁고,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도 즐거워요. 일등이 못 되면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나오기도 해요. 전 꼭 성공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친구요? 전 친구가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반 애들도 보면 시험 때인데도 친구랑 노느라 공부 못 하는 애가 있어요. 난 그런 애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친구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사귈 수 있어요. 하지만 공부는 안 그래요. 지금 처지면 나중에도 따라잡기가 힘든걸요.”


전 세상에서 우리 엄마를 가장 존경해요. 엄마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늘 열심히 일해요. 엄마는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있어요. 엄마 친구들은 엄마한테 대단하다고 하면서 부러워해요. 저는 그런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저도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어요.”(위 책, 114-115)


  아무 기댈 곳이 없는 현우에게 단 하나 숨통을 틔어주는 것은 집에 온 첫 날 밤, 무서워 떨고 있는 현우 앞에 나타난 작은 아이이다. 그 아이는 현우를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늘 현우를 지켜보고 있는 그 아이는 현우와 함께 자라난다. 그러나 현우가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갈 때 그 아이는 더 이상 현우를 위로하고 힘을 주지 않았다.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이상한 질문들을 던져 현우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도통 내 생각, 아니 엄마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와 계속 이야기하는 건 너무 답답한 일이었다.


그만 가. 나 공부해야 해.”


또 공부를 해?’


내일 학원에서 영어진급시험 있어.”


…….’


그 아이는 불쌍하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를 무시한 채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아이가 가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저 아이는 누굴까? 왜 내게 나타나는 걸까? 다른 애들에게도 저런 아이가 나타날까? 만약 저 아이가 내가 보는 환영이라면? 정말 내 머리가 이상한 건 아닐까?


대체 넌 누구야?”


나는 고개를 휙 돌려 그 아이에게 물었다.(41-42)


  현우는 그 아이가 수시로 자기 앞에 나타나 자신이 만들어낸 현실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엄마의 기대와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끌려가는 현우는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진정한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자기 앞에 떠올린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너와 함께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용과 함께의 도키오다. 도키오는 엄마가 죽은 뒤 용과 함께 살아간다.


  포치는 말야, 시간 가지고 잔소리를 많이 해. 엄마가 시켰대. 엄마가 없어도 내가 밥 잘 먹고, 날마다 목욕도 잘 하도록 말이야. 그래서 내가 정해진 시간에 목욕을 안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안 자면 화를 내.”


나는 동생이 나간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다.


목욕탕에서는 꺄악꺄악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마치 누구와 함께 물을 끼얹거나 욕조에서 잠수 놀이를 하며 내는 목소리 같았다. (위 책, 17)


  도키오는 자기 앞에 있는 포치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너를 바라볼 때 나를 알 수 있다.


  포치는 진짜 예뻐, 비늘은 초록색이야. 그것도 팔손이나무 이파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색, 햇살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


…………


칼날 같은 발톱과 창 같은 송곳니. 은빛 날개와 은빛 뿔. 목이 길어서 기린 같지만, 꼬리는 더 길어. 길고 가늘어서 엄마 팔처럼 포근해.”


…………


그런데 가장 예쁜 건 눈동자야. 항상 금빛으로 빛나, 그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면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26)


  도키오가 묘사하는 것처럼 포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도키오 앞에 나타난다. 도키오는 포치의 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잃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포치는 도키오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줄뿐더러 도키오를 위험에서 지켜준다. 포치의 날개는 점점 자라나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만큼 힘을 갖고 있다.용과 함께에서 도키오를 구원하는 것은 상상의 힘이다. 그 상상은 엄마에게서 비롯되었다. 강아지를 주워온 도키오에게 아버지는 화를 내며 다시 갖다 놓으라고 했고 기운이 빠진 도키오에게 엄마가 사다 준 알이었다. 거기서 나온 아기용이 점점 자라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하늘을 날아다니게 된 것이었다. 현우의 상상이 현우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면 도키오의 상상은 도키오가 실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도키오의 형 다카시는 역시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닌 채 현우와도 같은 삶을 살아왔다. 자신의 소망과 느낌들을 접어둔 채로 말이다.


  엄마도 말했어. 형아는 아빠를 꼭 닮았다고. 스스로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엄마 같은 건 필요 없다고.”(위 책, 61)


나는 엄마가 필요 없다는 생각 같은 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엄마가 그렇게 말한 것뿐이다.


동생이 태어난 뒤로 엄마는 나에게 단 한 가지 말밖에 하지 않았다.


다카시, 너는 형이니까 참아.”


도키오는 몸이 약했다. 동생은 갓난아기가 앓을 만한 병은 무엇이든 다 앓았다. 그래서 엄마는 밥 먹듯이 병원에 다녔다 (중략)아무도 없는 어둡고 추운 방 안에 혼자 남아 나는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무렵, 나는 동생이 싫었다. 동생은 여섯 살인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으니까.. (위 책, 63-64)


  그러나 다카시는 엄마를 잃은 충격에 자기 안으로 숨어버렸던 동생을 보살피고 놀아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의 삶은 진정으로 그 자신에게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다카시는 결국 상처 받고 울고 싶은 나를 깊숙이 숨겨놓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도키오를 돌보며 다카시는 자신과 도키오를 함께 치유해간다. 다카시가 포치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다카시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동생은 너무나 무거운 존재였다. 그러나 도키오의 상상속으로 다카시가 한 걸음씩 들어갈 때마다, 그들이 재미있게 놀 때마다 치유의 과정이 함께 일어난다.


  다카시와 도키오에게는 엄마가 있었다’. 그들은 엄마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카시의 기억에서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도키오가 태어나기 전에는 분명히 다카시에게도 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엄마였을 것이다. 유아기 때 경험했을 진정한 관계는 고립된 동생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어주었다. 도키오도 그렇다. 엄마와 맺고 있던 긴밀한 관계는 엄마가 죽은 뒤에도 포치를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엄마의 사랑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에게 기대고 용기를 주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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